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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축복의 본질

  • 조수아 기자
  • 입력 2026.10.04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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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누리는 참된 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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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둘람 형제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말씀은 에베소서 1장 3절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준 이 귀한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원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원하고, 건강한 신체를 원하고, 평안한 마음을 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적인 복입니다. 영적인 복이 없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우리는 이 영적 복의 근원이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축복할 때 사용했던 표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가 어떤 영적 축복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을 읽어보면 바울 사도는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매우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영적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감사의 인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깊은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가장 고귀한 표현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경험하고 누린 모든 영적 축복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면,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시간에 주신 영적 강함, 미로 같은 인생길에서 주신 인도하심, 죄악으로부터 주신 구원,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 속에는 우리의 축복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모든 영적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롯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정한 영적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중심이며,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며, 우리의 영적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축복을 원한다면,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누구일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들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금과 은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좋은 아버지를 가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주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최고의 아버지를 가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아버지-자식 관계를 맺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한 부자가 이 사람을 자신의 양자로 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그 부자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신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 손에 들어온 재산이 없을지라도, 그의 신분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식이 되었을 때, 우리는 영적인 신분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영적 부자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적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봅시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이 고백을 통해 우리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갈 것임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을 나누어봅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축복받은 이유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이 축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바울 사도가 언급하고 있는 우리가 받은 축복의 구체적인 내용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는 표현을 주목해봅시다. 이 표현은 우리가 받은 축복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 즉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이라고 하면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먼저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들어오는 것, 좋은 집을 가지는 것, 건강한 신체를 가지는 것 등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가 말하는 진정한 축복은 "신령한 복"입니다.


"신령한 복"이란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죄로부터의 구원, 하나님과의 화목, 영원한 생명, 성령의 내주하심, 하나님의 자식 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상속권 등 이 모든 것들이 신령한 복입니다. 이러한 축복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물질적인 부의 영향보다 훨씬 더 깊고 광범위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축복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 평안을 얻고, 우리의 삶은 의미를 얻고, 우리의 미래는 밝아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적 축복이 하나나 둘이 아니라 매우 많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영적 축복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이 모든 순간들이 영적 축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축복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들에만 집중하다 보니,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수많은 영적 축복들을 놓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축복들이 "하늘에 속한" 축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이 축복들의 영원성과 궁극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물질적인 축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도둑맞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고, 불에 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속한" 영적 축복은 영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계속되고, 사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 축복이 물질적 축복보다 훨씬 더 귀한 이유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와 한 거지가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큰 저택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불안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잃을까 봐 걱정했고, 자신을 속일 사람이 없을까 봐 의심했습니다. 반면에 거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식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거지는 자신이 진정으로 부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날, 부자의 모든 재산이 한 번의 재난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는 완전히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거지는 여전히 기쁨을 잃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진정한 재산인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집의 창고가 있었습니다. 이 창고에는 물질적인 보물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금과 은, 보석들, 좋은 옷들이 모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주인은 항상 불행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창고는 흰개미에 쉽게 먹혔고, 도둑이 자주 침입했고,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에게 한 분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아무것도 창고에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모든 것을 하늘에 있는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기쁘고 평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보물은 영원히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보물을 이 땅에만 쌓는 대신,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진정한 축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 축복은 물질적 축복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요롭습니다. 영적 축복은 영원하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축복입니다.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집중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축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번 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당신이 받은 영적 축복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아침에 눈을 떨 때, "나는 하나님의 자식이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다", "나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았다" 라고 고백해봅시다. 그리고 이 고백이 우리의 하루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경험해봅시다. 또한 우리가 누리는 영적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봅시다. 예를 들어, 낙심한 친구를 만났을 때, "당신도 하나님의 자식이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봅시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이 놀라운 영적 축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봅시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축복의 근거를 매우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근거는 "그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우리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봅시다. "은혜"라는 개념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어지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만약 우리가 받은 축복이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보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영적 축복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 할 것은 심판과 형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고, 대신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 사도는 그 이유를 "그의 은혜의 영광으로 말미암아"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체로 매우 영광스럽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지, 우리가 무엇을 했든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향해 흐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선함과 나쁨을 저울질해서 대응합니다.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은혜의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사용한 "택하다"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선택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1장 4절을 보면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태어났을 때, 우리는 죄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이었고, 교만했고,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나쁜 성질을 버리고, 사랑, 공의, 진실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도록 변화시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축복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어느 날 한 부자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한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이 아이는 매우 더럽고 헤진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이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가 자신의 오래전에 헤어진 아들과 닮은꼴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확인을 위해 아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모든 확인이 끝났습니다. 이 아이는 정말 자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나면서 아버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놓치고 있었고, 계속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아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아들을 깨끗이 씻게 했고, 새로운 옷을 입게 했고, 최고의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아버지, 왜 저를 이렇게까지 대해주시나요? 저는 당신을 배신했고, 길을 잃고 헤매었는데요."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넌 여전히 내 아들이다. 넌 내가 택한 아들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 거룩하고 흠 없게 만들고 싶다."


한 조각의 금광석이 있었습니다. 이 금광석은 흙에 묻혀 있었고, 온갖 불순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명의 장인이 이 금광석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광석을 그냥 거기 내버려두었지만, 이 장인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장인은 이 광석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열과 망치질을 통해 불순물을 제거했습니다. 마침내 순금이 나타났습니다. 금광석은 이제 아름다운 순금의 장식품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원래 흙 속에 묻혀 있는 광석과 같았습니다. 불순물인 죄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장인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열을 통해, 성령의 역사라는 망치질을 통해 우리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우리는 아름다운 순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되고 있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실패감, 부족함, 초라함이 우리를 축복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축복은 우리의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동안, 당신이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해 낙심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해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거룩함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당신의 자녀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은혜의 진리를 전해봅시다. 그들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봅시다.


우리가 받은 축복의 또 다른 근거를 살펴봅시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택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 표현입니다. "미리 정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운명을 이미 정해놓으셨다는 의미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신학적 해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을 하나님이 결정하신 방식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신 이유를 "사랑함으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신 것이 무언가 냉정한 계획이나 운명이라면, 이것은 우리에게 공포를 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와 안정을 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많이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랑이 같은 수준의 사랑은 아닙니다. 음식에 대한 사랑은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만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이 나에게 주는 것과는 관계없이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일 때도 우리를 사랑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우리의 외모나 능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잘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 부자와 빈자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능력이 있고 잘생긴 사람들을 더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외적인 조건들로 우리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가 가진 진정한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우리를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무기한 불안정함 속에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명일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질병, 재정적 어려움, 관계의 파괴 등 많은 위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정하신 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신 계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우리는 원래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이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심판하지 않고, 대신 우리를 자신의 자식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거리에서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굶주리고 있었고,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를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혐오의 눈초리를 보냈고, 어떤 사람은 동정의 마음으로 몇 푼의 돈을 건네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이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여인은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여인은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주었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었고, 부드러운 침대에서 자게 해주었습니다.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왜 저를 이렇게 도와주세요? 저는 당신의 아이도 아닌데요."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미리 정해서 내 아이로 삼았어. 이제부터 넌 나의 자식이다. 그리고 내 모든 것은 너의 것이야."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몰랐고,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을지 몰랐고, 자신의 인생이 의미 있을 것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한 날, 이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너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나는 너를 내 회사의 후계자로 미리 정해두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라. 내가 너를 보호하고 인도할 것이다." 이 사람은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불안을 내려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가 바로 성경입니다. 그 편지에는 "내가 너를 사랑하고, 미리 정했고, 너는 내 자식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능력이나 외모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자신의 자식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늘부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명상해봅시다. 침상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중얼거려봅시다. 이러한 명상은 우리의 불안을 잠재우고, 우리의 영혼에 평안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받은 이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봅시다. 특히 당신의 친구들, 그리고 낙심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미리 정하심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그들도 이 위대한 사랑을 경험하게 됩시다.

 

우리가 받은 영적 축복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바울 사도는 매우 명확한 답변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 특히 죄 사함이라는 축복은 "그 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 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을 때, 무엇이 일어났을까요? 많은 신학자들과 성경의 말씀들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몸에 담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죄를 지은 우리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따라서 우리 모두는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죄 없이 의로운 삶을 살아간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왕도 노동자도, 남자도 여자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모두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절망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보시고,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완벽하게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요? 죄 없는 분이 죄인들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피, 즉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값을 치렀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죄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가장 위대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절망 속에 있지 않습니다.


"죄 사함"이라는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해봅시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가 "무시되었다"거나 "용서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가 완전하게 제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은 제사장에게 동물을 가져갔습니다. 제사장은 그 동물을 제단에서 죽였습니다. 그 동물의 피가 죄인을 대신하여 흘려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죄인의 죄가 제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제사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제물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로는 더 이상 동물의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 한 번으로 모든 죄가 영원히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왕실의 법을 어겼습니다. 그의 죄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왕실의 법에 따르면, 그는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아이는 왕의 면전에 끌려갔습니다. 왕은 아이의 죄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이는 죽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왕의 아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왕자는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아이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저는 죄를 지은 것이 아니지만, 이 아이를 위해 죽겠습니다." 왕은 아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으로 아이의 죗값이 치러졌습니다. 이제 아이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아이는 죽음 대신 새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아이입니다. 우리는 죽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로워졌습니다.


한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건물 안에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소방관들은 사다리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불이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한 소방관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 소방관은 마지막 사람을 안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소방관은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소방관은 그 사람을 먼저 떨어뜨렸고, 자신은 불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소방관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살았습니다. 소방관의 죽음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해준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상황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불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죄의 불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의 불 밖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죄는 실제하며, 심각하며,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치렀습니다. 다섯째, 우리는 이제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있게 명상해봅시다. 우리가 지은 죄들, 우리가 한 잘못들, 우리가 상처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씻겨졌다는 것을 깨달아봅시다. 우리가 죄의식으로 짓눌려 있거나, 과거의 죄로 인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 그것을 내려놓아봅시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미 그것을 다 처리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이 위대한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봅시다.


우리가 받은 축복의 또 다른 측면을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1장 8절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풍성한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풍성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봅시다. 이것은 "부족함이 없다", "넘친다", "풍요롭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정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 그대로 풍성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그날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만날 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할 때, 용서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우리가 슬플 때, 위로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 모든 은혜가 풍성하게 우리에게 흘러옵니다.


"우리는 그 풍성한 은혜를 따라"라는 표현을 주목해봅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 맞추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기준이 되고, 우리의 삶이 그 은혜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 속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기 중심적이고 욕심에 가득 찬 삶을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따르며 산다면, 우리의 삶은 은혜로 가득 찰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풍성한 은혜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은혜 가운데서 모든 지혜와 슬기를 얻었노라"고 합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표현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혜와 슬기를 학교에서 배우거나,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우리가 얻는 진정한 지혜와 슬기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얻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혜"와 "슬기"의 차이를 살펴봅시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고, "슬기"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지혜는 "당신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이고, 슬기는 "당신이 그 지혜를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 둘 다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상황들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종종 잘못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당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용해도 된다" 같은 지혜를 가르칩니다. 이러한 지혜를 따르면, 우리는 탐욕과 미움과 질투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얻는 지혜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랑하라", "섬기라", "용서하라" 등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지혜를 따르면, 우리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강하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어리석음과 약함의 상징입니다. 왕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처리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혜입니다.

 

어느 큰 회사의 회장이 자신의 후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우수한 젊은이들을 선택했습니다. 첫 번째 젊은이는 최고의 대학교를 졸업했고, 가장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젊은이는 여러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경영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젊은이는 이 세 명 중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장은 세 명에게 각각 같은 일을 맡겼습니다. 그들에게 회사의 문제를 해결할 계획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젊은이는 복잡한 경영 이론을 적용했습니다. 두 번째 젊은이는 그 동안 성공했던 방법들을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젊은이는 직원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몇 개월 후, 회장은 결과를 보았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젊은이의 방법은 효과가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젊은이의 방법은 대성공이었습니다. 회장은 세 번째 젊은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했습니다. 회장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가장 높은 학위도 없고, 가장 많은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나요?"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겸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회장은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학위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겸손함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 개울이 있었습니다. 이 개울은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여러 개의 지류를 통해 물을 받습니다. 개울의 물은 항상 흐르면서 자신의 경로를 옮겨갑니다. 개울이 바위를 만날 때, 개울은 바위를 피해 흐릅니다. 개울이 낭떨어지를 만날 때, 개울은 폭포가 됩니다. 개울이 산을 만날 때, 개울은 산 위로 올라갑니다. 개울의 물은 항상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개울을 인도할까요? 중력입니다. 개울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흐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중력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을 이 은혜의 흐름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동으로 지혜와 슬기를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고 제한이 없습니다. 진정한 지혜와 슬기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종종 상반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번 주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 기도할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봅시다. "하나님이시여, 오늘 제가 만나는 일들 가운데서 당신의 지혜를 주소서. 저는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당신의 은혜 가운데서의 지혜를 원합니다." 이렇게 구하면서, 우리가 받는 대답들을 기록해봅시다. 또한 우리가 지난해 우리의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 결정들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의 지혜였는지 살펴봅시다.

우리가 받은 축복이 진정한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변이 에베소서 1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인침"이라는 개념을 살펴봅시다. 인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대 사회에서 인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편지나 문서에 자신의 인을 찍으면, 그것은 그 문서의 진정성을 증명했습니다. 또한 인침은 소유권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물건에 어떤 사람의 인이 찍혀 있으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물건임을 의미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인침도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인침은 첫째, 우리가 받은 축복이 진정한 것임을 증명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이 단순한 마음의 위로나 심리적인 안정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진정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거짓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인침은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그리고 이 소유권의 표시가 바로 성령의 인침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성령의 인침이 찍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내가 모든 육체에게 내 영을 부으리니"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바로 이 약속의 성취입니다.


에베소서 1장 14절을 보면,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기업"은 상속받을 유산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눌 것입니다. 성령은 이 모든 약속이 진정하다는 것의 보증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계심으로써 "당신이 상속받을 것이 있다", "당신의 미래는 보장되었다"는 것을 확증해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증상이나 현상을 통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성령 충만할 때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그들은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깊은 영적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인침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의 변화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설명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강,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것들이 자라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대사관으로 일하는 한 외교관이 있었습니다. 이 외교관은 특별한 증명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증명서에는 그 나라의 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 증명서 덕분에 외교관은 어떤 국경에서든지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것이 검사받지 않았습니다. 그의 짐이 열려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증명서에 찍힌 인이 그가 특별한 신분임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침이 찍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임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옥의 권세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삶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인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부자가 자신의 딸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딸이 성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특별한 반지를 주었습니다. 이 반지에는 가족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내 딸아, 이 반지를 항상 소지하여라. 이 반지는 너가 내 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반지를 보면 모든 사람이 너를 나의 딸로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항상 내 보호와 돌봄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딸은 아버지의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딸은 언제나 반지를 끼었습니다. 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반지를 보고 딸을 도와주었습니다. 딸이 낙심했을 때, 반지를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성령이라는 영적인 반지를 받았습니다. 이 반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식임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반지는 우리에게 안전과 평안을 가져줍니다.


성령의 인침은 우리의 축복이 진정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인침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나타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미래의 상속을 보증합니다.  성령의 인침의 증거는 우리의 삶의 변화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임을 깨달으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여겨봅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몸을 관리할 때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생각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인침의 보증으로 인해 우리는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보장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영적 축복을 깨달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5절 이하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자신의 영적 축복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가 기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영광의 아버지시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이며 그 능력의 지으심에 나타나는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기도를 보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세 가지를 알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왜 불렸을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택하셨을까요? 우리의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좋은 삶을 살고 편하게 살기 위해 불려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불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불려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불려진 것입니다.


둘째,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상속받을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속은 물질적인 재산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을 상속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속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셋째, "그 능력의 지으심에 나타나는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드신 계획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9-20절에서 이 능력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하시려 하노니 곧 그의 능력의 역사로 역사하심을 따라 그 능력이 우리 믿는 자들 속에서 얼마나 위대한지이니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사 하늘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셨으니."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그 능력이 바로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 죄를 이기는 능력, 악을 이기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요?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것들에만 집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 축복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바울이 기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이러한 축복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기도하기를 멈추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기도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계속된 기도를 통해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영적 축복을 깨달을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단순히 한 두 번 기도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가족을 위해, 우리의 교회를 위해, 우리의 사회를 위해 계속된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자신의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왜 계속 그 아들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그는 이미 범죄했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아들은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변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쳤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저를 이렇게 끝까지 사랑하셨어요? 어떻게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하셨어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넌 내 아들이다. 비록 넌 감옥에 있었지만,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다. 그리고 나는 너의 회복을 믿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기도했다."


한 정원사가 있었습니다. 정원사는 한 심기에 여러 종류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사는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매일 물을 주십니까? 한 두 번만 주면 안 되나요?" 정원사가 대답했습니다. "이 꽃들이 자라나고 피어나기 위해서는 계속된 물이 필요합니다. 한 두 번의 물은 부족합니다. 매일 물을 주어야 꽃들이 자랄 수 있습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정원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중보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한 두 번의 기도가 아니라, 계속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영혼이 자라나고, 영적 축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적 축복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기업의 영광을 알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번 주부터 형제들이 아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된 중보기도를 시작해봅시다. 형제들의 잃어버린 가족을 위해, 형제들의 친구들을 위해, 형제들의 사역 지도자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봅시다. 특히 형제들의 자녀들이나 제자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소망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해봅시다. 형제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기록해봅시다. 그리고 형제들이 본 응답들을 기록해봅시다. 이것은 형제들의 중보기도의 역사를 보여줄 것이고, 형제들을 더욱 더 기도하도록 격려할 것입니다.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바울의 고백 속에서 우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도 축복이지만, 진정한 축복은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적 축복은 하늘에 속한 축복으로서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적 축복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체적인 축복들로는 죄의 사함, 하나님과의 화목, 영원한 생명, 성령의 내주하심, 하나님의 자식 됨 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 우리를 미리 정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영원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죗값을 완전하게 치렀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형벌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졌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성령으로 인증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령의 인침은 우리의 축복이 진정하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미래의 상속을 보증하십니다. 성령의 증거는 우리의 삶의 변화 속에서 드러납니다.


우리의 축복은 우리를 기도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계속된 중보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영적 삶을 위해 중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 말씀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만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유산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축복에 감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축복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감사와 찬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영적 축복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찹니다.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위험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주님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졌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는 감사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 위대한 축복을 우리가 완전히 깨닫고, 우리의 모든 삶이 이 축복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에 걸맞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우리의 기업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쥬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족이 이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의 자녀들이 이 축복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이 축복을 알 수 있게 해주소서. 우리의 교회 공동체가 이 축복으로 가득 찬 공동체가 될 수 있게 해주소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받은 축복을 기억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 우리가 주님앞에 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보호해주소서. 우리가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주소서.


이 모든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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